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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세] 정상이 아닌 모든 것들은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

Yanca 2018. 11. 1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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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즉 일반적인 행동 패턴에서 벗어난 모든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 '피한다'는 것은 '비굴함'이나 '부끄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건이나 세상 모든 '변화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들은 나나 우리에게 일정 시간 '피해가 없고 앞으로도 피해가 없을 것이다'라는 검증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사건이나 어떤 생각이나 그 모든 것에서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자라 비슷한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 다른환경에 의해 다수의 생각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 때에 우리는 조심하고 경계하며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그런것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 끼리는 금방 친해지기도 하고 그것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하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과연 어디까지 '경험'으로써 체득하기를 바라며 놔둬야하는가에대해 '안전'에 관한 부분을 빼고 '방목'하듯 풀어두는 부모가 많을것이다. 무엇이 옳은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다. 나도 그런 부분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하지만 딱 잘라 말하고 싶은것은.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아래와 같이 그 모든것을 '피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만화처럼 영화처럼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 인연이 되는 드라마틱 한 '이야기'는 논외로 하겠다. 행성과 행성이 만나 부서지는 그런 급작스런 '반응'에대한 경계와 우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만남'은 '급작으런 폭발적 반응'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한 점진적인 화합'을 지향한다. 뜨거워 지지 말라. 그런 말을 하고 싶은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지 못한 문명은 도태되었고 생물학적으로도 적당한 자극이 세포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적으로 봤을때나 도움이 된다는것이지 그 접촉 당사자 개개의 세포들은 싸움을 해야한다. 많고 적게 피해나 자극에 대해 받아 들여야 한다. 예를들어 낯선이를 맞는 원주민이나 날아오는 돌맹이를 피하는 것이나 따뜻한 방에서 나가 한겨울 추위에 부딫힌 맨 살이라던가 좋은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 충격이나 고통은 온전히 처음 만나 대처해야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런 이야기다. 만약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짱돌을 보고도 피하지 못한다면 분명 내 얼굴의 모양은 변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에 어떤 보상을 받게 되더라도 피해를 받기 전으로 완벽하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대신 다음번에는 '날아오는 짱돌은 나에게 고통과 변형을 가져온다'는 경험을 통한 데이터(정보)에 의해 가능한 피하게 될 테고 어쩌면 더 큰 위험을 벗어나게 될 선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분명 가해자에게 관대하다. 내 생각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공평한것 같은데 어떤 한 사람을 죽인 한 사람에대해 온갖 이유를 들어 적당히 20~30년 사이의 형량을 때린다. 언젠가 부터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한다며 영구 격리 해야하는 사람들을 적당히 가뒀다가 어느 순간 슬며시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사람들 사이로 내보낸다. 그리고는 높은 확률로 어느 누군가는 다시 희생되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이해하기 어렵고 모순되며 억울하고 황당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하며 그에 대한 대처를 해야만 한다.


특이한 사람. 즉 이 이야기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일반적이지 않는 사람은 평소 그 특이함이 드러나거나 딱 마주쳤을 때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흔히 '편견'이라고 이야기 하는 그것. 그것은 일반적인 사고방식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것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해 그것은 '알고 있는것'과 '생소한 것'으로 나뉠텐데 '생소한 것'은 '특이한 것'이고 '정상이 아닌 것'으로 나는 정의하고 싶다.


입에 거품을 문 눈이 돌아간 개를 길을 가다 마주쳤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는 다다갈 지도 모른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무섭다'고 반응하지도 모르지만 분명 몇명정도는 집에 키우는 강아지를 떠올리며 무서워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 '정상이 아닌 미친 개'를 바로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편견'이라 함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치우친 관점이라고 할 때 '누적된 정보'를 '편견'이라고 치부하며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모든 가능한 수를 다 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때라도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것을 경계하라고 말하고 싶다. 가능한 그 어떤 상황이라도 모든것에서 안전한 쪽으로 피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일반적이지 않은 특수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평소의 평온함을 방해하는 어떠한 요소에 대해서도 미리 감지하고 대처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황당한 경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매일 다니던 길 어느 가게의 앞 인도의 한 복판이 점점 날이갈 수록 조금씩 꺼저 내려간다고 해 보자. 그 길의 움푹 파인 곳을 매일 다니던 길인데 변화를 무시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며 앞으로도 그 한가운데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그곳은 분명 어느날엔가 갑자기 푹 거져 사람이 다칠 확률이 높다. 간혹 뉴스에서 '씽크홀'이라는 지하의 어떤 사정으로 흙이 쓸려나가 땅이 꺼지는 현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분명 피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로 거의 매일 '뉴스'에서 사건과 사고로 만나게 된다. 이것은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정도로 우리 사회 대부분은 '상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바로 이런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길이나 사물이나 어떤 현상이든 상식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모든것은 '데이터 부족' 즉 '정보부족' 현상이다. 그것을 어떤 판단없이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타의에 의한 '변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즉각적이든 점진적이든 분명히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그것은 마주하는 개인에게는 행운이 되거나 불행이 될 가능성이 높으나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당면한 문제가 아니고서는 사건이 있은 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번 살펴볼 뿐이다. 누구도 본인이나 가족이나 당사자와의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저 구경만 하면 되는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는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사회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 다니는 길에 똥이있다면 누군가가 밟기 전까지 그냥 나만 피해다니는 꼴이다. 분명 누군가는 밟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똥을 밟은 사람은 '재수가 없다'며 피해를 받아들이고 만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 똥을 싸 놓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방치한 사람이나 밟은 사람들이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서는 다음에 그 똥은 다시한번 밟아줄 사람을 노리며 등장하게 될 것이다.


갑작스런 변화는 일단 피하는것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상식인 것이다.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정보가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또는 그 사람을 또는 그 동물이나 사건에 대해 '일반적이지 않다'라고 판단을 하게 되는것이고 그것이 '정상'인 것이다. 고로 피하고 경계하며 관찰하는 신중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피하고 외면하는것이 아니라 피하고 '관찰'해야한다. 그냥 피하고 외면하면 다음에 그런 상황에 대해 대처해야할 방법을 영영 알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면 그 '특이함'은 다음번의 나에게나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마주하게 된다. 나에게 닥처온 상황을 피하고 그 상황에 대한 관찰을 통해 상황을 판단해 본다면 그것이나 그나 그 동물이나 그 물건에 대해 적당한 대처를 할 수 있게 된다. 그 정보는 본인에게 주변에게 이익이 되며 그런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있기에 이 사회는 무탈하게 흘러갈 수 있게 되는것이다.


'어라? 누가 길바닥에 똥을 싸 놨네? 누가 밟으면 곤란하니 내가 치워야겠다'거나 '여기 공사중이라 웅덩이가 있으니 피해가시오.' 라고 펫말을 붙인다거나, '주변에 미친개가 있으니 잡아가라'고 어딘가에 연락을 한다거나 '수상한 사람이 어슬렁거리니 조사해보라'고 경찰서에 연락을 한다거나 '저사람 정상이 아닌것 같으니 조심하라'거나 그런 사전적인 조치가 가능한 것이다. 만약 어느 우주 멀리서 지구를 향해 무언가 접근을 한다면 우리는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 분명 A부터 Z 아니 그 이상의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냥 외면한다면 분명 다음사람이 그 상황에 마주하게 될 텐데 만약 그사람이 어떤 적당한 대처를 못하게 된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일반적이거나 비관적이거나. 그 사람이 일반적으로 넘어가더라도 그다음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분명 어떤 한 사람은 '비관적'이게 되는것이다.


이제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정상'이 즉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은 일단 모면해야 다. 피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적극적으로 피해야한다. 그 다음 그 상황에 대해 관찰하고 고찰하여 다음번의 나나 다른사람에게 판단 가능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갈무리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안정적이 되는것이다. 굳이 똥을 찍어먹어봐야 '아 이게 똥이구나'하는 식이면 곤란하다. 현명해야 하며 그러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조심해야 하는것이 많기도 하다.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길을 다닐 때 사람조심, 개조심, 자동차 조심, 발 밑에 머리위에. 항상 조심해야한다. 학생들은 신체적으로 몸의 반사신경이 좋지만 경험부족으로 '사람조심'에 대해 '상황조심'에 대해 더 조심해야하며 다 큰 성인이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언젠가 마주치게될 특수한 상황에 대해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뉴스'를 보게 되는것이다.


뜨겁게 부딪히지 말라! 차갑게 관찰하라. 분석하고 정리하라. 결론이다.


나와 우리 모두가 모든것이 상식적으로 흘러 가야하는 이치를 이해하고 새로운 정보를 패치하여 편안하고 안전한 생을 이어가길 바라며. 주절거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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