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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임계점

Yanca 2018. 11. 18.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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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인지 내가 생각하는 어떤것이든 이미 누군가가 앞서있다. 이번글에서 나는 '임계점'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 인터넷에 혹시 누군가가 쓴 글이 있는지 검색해 보니 '임계점'이라는 주제로 여러 컨텐츠가 있었다. 독서에 대한것을 찾긴했으나 나는 다른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물이 끓어 기체가 되는 한 점. 전환점이랄까. 특별한 어떤 시점이랄까... 유충이 성충이 되고 고치를 통해 완전변태하는 곤충에 비유하면 어떨가...우리 인생의 어떤 시점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병아리가 생을 시작하는 알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처럼. 인간은 어미의 양막을 찢고 세상에 태어난다.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처음으로 태어난 하룻밤을 보낸다. 젖을 빨고 처음으로 기저귀를 갈게되고 인생은 그처럼 모든것이 처음에서 처음으로 이어진다.


처음으로 어린이집엘 가게 되고 처음으로 친구와 싸우게 되고 때기리도 하고 맞기도하고 받아쓰기와 구구단을 외워야하는 시험과 숙제의 반복처럼 세상은 자신이 클리어해야하는 선택적 이벤트와 시간이 되면 발생하는 강제 이벤트로 구성되어있다.


때가되면 타의로 예방접종을 해야한다던가 학교에 가야한다던가. 해가 영원히 떠있는 세계가 아니니 밤이 찾아와 잠을 자야만 한다던가. 그런 강제 이벤트가 있다. 하지만 인생에 강제이벤트만 있다면 팔리지 않는 비인기 게임처럼 시시할게 분명하다.


때가되면 강제적으로 발생하는 이벤트는 그냥 게임이 아닌 '영화'를 보면 된다. 시간이 지남으로 그 순서에 맞춰 기승전결로 이어진 후 끝이 난다. 감독이 준비해 놓은 시놉시스는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반전이든 마지막엔 만든 사람들 명단을 화면 가득 올리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영화라면 많은 사람의 공감과 재미와 감동을 이끌어 낼 테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평범하거나 시시하거나 엉망이다. 우리는 재미있는 영화를 찾기 위해 별점을 부여해가며 명작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재미있는 영화, 재미있는 게임, 재미있는 인생을 원한다는 걸 알게 된다.


따라서 기술과 시대의 발달로 요즘 출시하는 게임은 거대자본에 힘 입어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자해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방식의 게임을 출시하고 있다. 인생을 반영하기 위해서일까? 누구를 만나는가. 무엇을 선택하는가 어떤일을 하는가. 어떤 아이템을 장착하는가. 모든 사소한 하나하나가 마치 '사다리게임'처럼 운명(스토리)의 라인을 타고 결말을 향해 이동한다. 


집에만 있는 사람은 선택요소가 적으니 강제적 이벤트만 감당하면된다. 집 밖을 나서는 사람은 크고 작은 선택적 이벤트에 연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집에서 인터넷을 통한 선택도 가능하다. 쇼핑몰에서 무언가를 산다던지 온라인 강좌를 듣는다던지 쌍방향 인터페이스를 통해 무엇이든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 또한 선택적 이벤트라 해야겠다.


논점으로 돌아가 생의 임계점이란 인생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큰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을 뜻한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이 어느순간 부자가 된다든지 솔로인 사람이 반려자를 맞이한다든지 만년 고시생이 고시에 합격한다든지 그런 특별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생은 마치 등산과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산을 오르는 고통을 이겨낸 자만이 정상에서 산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그 고통을 이겨내는 의지와 꾸준함.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발 내디딘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특별하다. 산을 오르기로 한 것. 바로 그것이 시작인 것이다. 산을 오르기로 마음먹고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로 그는 시간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그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한. 산의 정상에 서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하다.


결심(출발점) - 진행(과정) - 도달(목표점) - 경험치 획득(보상) = 반복(퀘스트)

임계점 = LEVEL UP! 

빰빠바밤~! 아이템 착용가능, 이벤트 발생가능, 전직가능! 다음 단계로 GO!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남자든 여자든 반려자를 찾을 결심을 하는 순간 출발점에 서게 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마침내 적당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있다. 공부를 하는 사람도 어떤 시험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마침내 과정을 통해 떨어지든 통과하든 그 선택 이벤트와 강제 타임아웃에 의해 임계점을 맞이한다.


돌파하느냐. 되 돌아가 반복하느냐. 단지 그 뿐이다. 만약 게임처럼 '세이브 포인트'가 가능한것이라면 얼마든 도전 가능한 만큼 도전해도 좋지만 단 한번의 도전만 가능한것이라면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보는것도 좋을 것이다.


물을 끓이고자 하여 불을 댕긴다면 물이 끓을 수 있을 만큼의 화력이 지원되어야 물이 마침내 끓어오를 수 있는 것처럼. 어떠한 임계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무언가를 꾸준히 행동해야 한다. 그 후 돌파하느냐 실패하고 반복하느냐. 그 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대부분 시작만 해 놓고 중간이 없는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소를 시작하여 마무리를 하지 않는타입처럼, 무언가를 시작해 놓고 끝을 내지 못한다. 어떤것은 마침표를 찍지만 대부분은 시작만 해놓고 마무리를 보지못한다. 과연 나만 그런 사람일까?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특별한사람은 어떠한가. 그들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므로 시작을하고 끝을 확실하게 보는 타입일 것이다.



나는 '지네'를 키우기 위해 먹잇감으로'밀웜'을 키우고 있다. 밀웜은 먼지처럼 작은 크기에서 성장을 시작해 약 3센티가 될 때까지 밀 껍질을 먹고 싸기를 반복해 '변태'를 시도한다. 중간에 낙오, 탈락한 녀석들을 제외하면 적은 수가 성충 밀웜이 된다. 자연의 섭리란 그런 것이다. 모두가 성충이 되지 못하고 '자손'을 남기지 못한다. 시작에서 끝으로 갈 때까지 인생 달리기에 '완주'하는 수는 확률 적으로 적다. 꿈틀꿈틀 왕성하게 움직이는 녀석이 많이 먹고 빨리 커서 성충이 되고 다른 녀석에게 찝쩍대다가 새끼를 낳기까지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이 벌레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그런 나의 나태한 태도를 지금까지 묵인했지만 이젠 나이가 차서그런지 끝을 봐야만 하는 처지라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나태하게 인생을 방치해서는 타임아웃에 걸려 높은점수를 받는 엔딩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점수가 낮은 게임에대해 그냥 다음게임으로 넘거가든 다시 높은 점수를 도전하든 또 다시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딱 한번만 가능한 게임이라면 어떤가. 대충 레드데드리뎀션처럼 숨겨진 이벤트는 무시하고 메인퀘스트와 이벤트 만으로 만족하고 끝을 보고 말것인가? 예를 들어 어떤 게임의 전체 퀘스트 100개중 50개만 보고 엔딩을 보고 만족할 수 있단 말인가? 4시간짜리 완전판 영화를 마다하고 자르고 잘린 편집된 2시간짜리 영화로 만족해야만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언젠가 이 인생이 종료되는 날. 그때까지 달성한 최종 업적은 과연 평균값의 몇 퍼센트를 달성했을 것인가. 사회적 명망과 재산과 배우자나 자녀는? 토털 점수는 과연 A B C D E F 중 어디에 랭크될 것인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멋진 인생. 재미있는 인생, 훌륭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생의 임계점을 돌파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결과적으로 '노력'을 상회하는 '노오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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