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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 빠진 법과 씁쓸한 조소

Yanca 2018. 11. 21.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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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이 있다 치자. 사기꾼이 사기를 쳐서 도망을 가 한참을 숨어살다가 어느 날 나타난다. 그동안 돈을 뜯긴 피해자들은 가난해진 상태로 국가에 사기꾼을 잡아달라 신고했지만 국가는 못 찾겠다 손을 놓고 수십 년을 지내다 피해자들은 더 힘들고 가난해진다.


어느 날 나타난 사기꾼은 부자가 되어있었다. 사기 친 돈을 밑천 삼아 부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공소시효라는 법을 이용하여 다시 나타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자 그를 알아본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수군수군 댄다. 범죄자가 나타났지만 그들도 공소시효를 알았기에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소연을 할 곳이 없으니 수군수군 여기저기 글을 올려 볼 뿐이다.


그러자 뻔뻔한 사기꾼은 이미 다 지난 일로 사람을 곤란하게 한다며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법적 대응을 거론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사기꾼은 사기친 돈으로 법을 공부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돈도 사기당했고 이제는 고소까지 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재미있는 것은 허위사실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알고 보니 더 재밌는 것이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면 '때찌' 한다는 것. 억울한 사람은 안중에 없고 다만 '법'을 지켜라라고만 하는 대단한 법.


과연 법이라는 것은 누군의 편인가 생각해 보자. 법이란 것은 상식적으로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가볍게 생각했을 때의 정의이지만 그 법을 만들고 요리하는 자들에게는 사업 수단 생계 수단이 될 수 있다. 그 계통에 종사한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안다는 이유로 상담료로 시간당 수십만 원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천문학적인 돈도 아깝지 않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돈이 오가고 판결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포털에 검색해 보면 어렵지 않게 많이 찾을 수 있다. 이걸로 법이 힘 있는 자, 돈 있는 자의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심만 있고 돈이 없어서는 법으로 누군가와 싸우게 된다면 승산이 없는 것이다.


지들끼리 사바사바해서 땅땅땅! 하면 해결되는 세상이니 결국엔 돈과 정보와 인맥이 있다면 안될 일이 없는 세상이다. 또는 여론을 몰아 국민의 환심을 사도 모든 것은 가능하다.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법은 그것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위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방송사, 기자, 조작 단체 들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쓴다면 그것은 뉴스라고 할 수 있다. 거짓을 사실처럼 쓰는 자 들 또한 있다. 사실이지만 어느 한쪽으로 생각을 기울게 만드는 기사 또한 얼마든지 있다. 개인이나 집단이 이익을 위해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 쉽게 가능한 세상이다. 언제나 그래 왔다. 독자, 국민들은 그것을 간파할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으니 결국엔 누구라도 걸리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가능한 '기회의 땅'인 셈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범인들을 잡을 능력도 없는 나라는 결국 나중에 손 놓고 있다가 피해자들이 범인이 나타났다고 말을 하니 뻔뻔한 죄인의 편에 서서 피해자들을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 같지만 당장 고쳐지긴 어려울 것이 뻔하다. 법이 만약 일본과 관련이 없고 해방 이후 친일파들을 단죄했다면 지금의 법과는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 나라는 언제나 어떤 경우에서나 죄인에게 관대하고 결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기도 하고 법을 만지는 사람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며 또한 무전은 유죄니까 말이다. 한두군데가 문제라야 조금 손을 볼 텐데 이건 전체적으로 다시 만들어야 할 정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것도 이해가 가는 바이나 손을 보긴 봐야 할 것 같다.


그 숱한 사기꾼들과 범죄자들은 잠깐씩 감옥이라는 '학교'에 다녀와서 합법적인 '면죄부'를 받아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다. 전 모 대통령이 그러했고 수많은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이 그러했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흔히 말하는 '빨간 줄'을 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과거 범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또 그 사실을 알아도 날조되고 포장되면 '좋은 사람'인 줄 알고 또 당할 수밖에 없다. 몇 해 전 그런 사람 하나는 '대통령'을 해먹고 결국 수많은 죄를 짓고 또 '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 과연 그들은 무엇을 더 배워 사회에 나와 빨간 줄 수를 늘려 갈까... 그들은 사회의 리더가 되어 앞서있고 많은 재산을 챙겼고 그들을 따라 젊은이들도 가볍게 사기를 치고 돈을 벌고 외제차를 타고 술을 마시며 사람을 치고 변호사를 산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 따위도 애초에 없다. 이 나라는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훌륭한 법이 존재하는 나라인가 조소해 본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데, 양심이 있어야 도덕도 있는 것 아니겠나. 양심 없는 사람들이 지식과 정보와 돈만 있다면 법도 지키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고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꿈같은 세상. 누가 만들었을까... 어째서 나는 국어 수학 과학 다 낙제해 놓고 '도덕', '윤리' 점수만 높았던가... 아...나는 돈이 없구나... 법이라는 그물을 통과하지 못하는 양심이 살찐 물고기와 날씬한 뱀장어같이 양심이 없는 인간들, 엉성한 그물과 그것을 쉽게 통과하는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의 불공평한 경쟁 사회. 역시 알아야 면장이라도 하는구나 새삼 깨닫는다.


몇 해 전 나는 연장이 필요해 철물점을 가려고 얼마 되지 않은 거리를  차를 타고 급히 가다가 '안전벨트 단속'에 걸린 게 떠올랐다. 1000번 중에 한번. 그것도 집 앞에서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는 단속에 하필이면 그때 안전벨트를 안 매서 딱 걸린 적이 있다. 하소연도 필요 없고 더 이상 단속도 본 적이 없다. 결국 재수가 없었던 것이고 나는 이후 차를 타면 무조건 안전벨트를 매게 되었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이런 단속은 하면서 다른 단속은 안 한다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영화를 보면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 놈들은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단속을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그들은 치밀하고 집요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대충대충 설렁설렁 좋은 게 좋은 것으로 그냥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각종 사건 사고가 나는 것을 뉴스에서 심심찮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닌지 식당은 위생을 잘 지키고 있는지 쌀 수입업자들은 국내산 쌀과 섞어 파는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미리미리 단속하는 시대는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번도 미리 단속하고 계도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가끔 누군가에 의해 제보를 받아 뉴스에 나오는 경우는 봤지만 말이다. 내 생각에 '인력'이 없는것 같다. 하도 범죄가 많으니 '여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도 보게 배울게 뭐냔 말이다. 죄인이 많은 사회. 머리가 좋을수록 사회의 부정적인 편법을 먼저 배워 사람을 얕보고 가볍게 친구들을 속이고 괴롭히며 그렇게 사회를 배워 나아가니 커서 불편한 이웃이 되는 게 아니냔 말이다.


나사 빠진 엉성한 사회 구조. 누군가에게는 크나큰 기회의 나라임에 분명하고 공정한 경쟁이 통할 수 없는 사회를 방조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똑같이 노력해서는 최고가 될 수 없는 사회. 편법을 알아야 하고 인맥이 있어야 하며 돈으로 법을 주무를 수 있는 사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씁쓸한 글로 아침을 시작해 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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