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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큰 아저씨의 보약 같은 이야기
적십자회비 본문
12월이면 우편함에 꼭 들어있는 공과금 아닌 공과금 '적십자회비'가 뉴스 메인에 떠있길래 내 이야기를 써본다. 내가 생각 하는 내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아니 나의 대한민국은 내가 어렸을때인 1980년대를 시작으로 인식되고 정의되었다. 나는 70년대 생이지만 시골이 고향인 나에게 아침이면 마을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던 그 '잘살아보세~'로 신나게 시작하는 하루가 쨍한 하늘과 함께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하얀 쌀밥에 김치 꽁댕이에 된장국이 생각난다.
지금이야 배가 터지게 먹고 놀고 자는게 일이지만 그때는 맨날 날계란에 간장조금넣어 비벼먹는다던가 꽁보리밥에 쉬어 꼬부라진 열무김치라던가...항상 입맛없어 밥 안먹는것으로 땡깡을 부리던게 생각난다. 항상 아버지 살아계실때 듣던 50년대 60년대 못먹고 못살던 시절 이야기가 귀에 못이박히게 듣던 때가 그래도 지금은 그립다.
가끔 의심을 할때도 있었다. 과연 저런 성금은 걷어다가 누가 다 쓸까...라는... 당장 내 눈으로 본게 없으니 의심이 될만하고 흉흉한 소문이나 뉴스가 가끔 나오니 그럴만 하지 않겠나. 그러다가 어머니께 적십자이야기를 언젠가 듣게 되었던 것이다.
땡전 뉴스에는 '오늘 각하께서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내던 80년대 초반. TV속의 세상과 내가 살던 세상은 많이 달랐다. 서울에 큰 빌딩에 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었지만 나는 시골에 살았고 마당 구석에는 소 외양간과 돼지가 한겨울 입김을 뿜어내며 꿀꿀 거리고 닭장에는 닭들이 꼬꼬꼬~ 거리는 그런 시골이었다. 그나마 우리집은 우리동네에서 중간은 간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집에는 경운기도 있었고 마당도 넓었고 흑백티비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가 보던세상은 다 같이 못살던 세상인것이다. 더 잘 사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빈부의 격차가 크지 않았던 그시절...다 같이 못살던 그시절.
어머니는 그런 시골에서 내 동생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결핵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하셨었다. 그시절 고깃국도 잘 못먹던 시절에 막내를 출산하시고 잘 못먹어 급성으로 몸이 안좋아 지셨었다. 내 나이 서너살때쯤인것 같다. 나는 그 어린나이에 아픈 아버지와 기운없으신 할머니, 철없는 형과 눈만 동그란 내 동생을 보면서 너무일찍 철이 들었던것 같다. 그 막막함과 상실감, 걱정과 두려움이 아버지와 할머니에게서 내게로 전이되었던것 같다.
큰 수술을 하신 어머니는 다행히 살아돌아오셨다. 그 없던 살림에 당시 의료보험이라는것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그 시절에 시골 사는 사람들은 집을팔던 논을 팔던 소를 팔던 큰 빚을 지던 했을텐데 어머니는 서울물좀 드셔본 분이라 적십자의혜택을 받았던것 같다. 역시 사람은 알아야산다. 연로하신 시어머니에 병약한 남편에 줄줄이 삼형제를 두고 세상을 등질 수 없었던 어머니는 그 시골 주변에 누구하나 도움없이 아픈몸으로 직접 모든일을 해결하시고 수술 받으시고 살아서 걸어서 돌아오셨다. 나는 그시절 이야기를 가끔 어머니께 듣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나 나나 이 세상은 어쩜 이렇게 기가 막힐까 생각해 본다. 딱 한번이지만 그때 어머니는 적십자의 혜택을 받았던 것이다.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온 세월. 우리가족에게 어머니를 살려 보내주신 하느님과 적십자와 병원과 의사선생님께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내가 비록 큰 돈으로 누군가에게, 세상에 보답을 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시절 그 빚은 갚아야겠다 생각하며 내가 처음 내 이름으로 고지서를 받았던 그 때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잽싸게 온라인 송금을 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던 일은 내가 형편이 어려워져 몇년전에 그만뒀지만 로또도 절반은 불우이웃돕기라는 명분으로 꾸준히 구입하고 있으니 이깟 적십자회비 만원쯤이야 내가 아는 그 가치에 비하면 미안할 정도가 아닌가.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더 크게는 세상을 살리는 기적. 적어도 나 살아있는 동안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내련다.
감사합니다. 적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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